2022년 5월 27일

항아리 뒤집기

사람이 견디기 가장 어려운 감정 중 하나는 아마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경쟁심이 강했고, 누구보다 앞서고 싶다는 마음이 늘 가슴 깊이 달궈져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묘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넘지 못할 듯한 어떤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느꼈다. 그 벽이 얼마나 단단했던지, 나는 입학 후 2년 동안 거의 패배주의에 잠식된 채로 지냈다.

돌이켜보면 그 ‘계급’이라는 것은 대체로 영재고·과고 출신 여부에서 비롯된 듯했다. 나는 대학에 와서야 비로소 학점이라는 단위로 수업을 고른다는 사실조차 알게 됐다. ‘꿀강’, ‘이동시간이 적은 시간표’ 같은 것은 상상조차 못했다. 그러니 첫 학기가 순탄할 리 없었다. 벌써 4년이 흘렀지만, 그 낯선 제도와 환경에 적응하느라 허덕이던 때의 감각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 와중에 학과의 영재고·과고 출신 친구들은 신기할 만큼 잘 준비된 사람들이었다. 내가 존재조차 몰랐던 대통령과학장학금, 이공계장학금 같은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며, 심지어 금전적인 기반까지 착실히 다져나가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서로 다른 ‘부류’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다. 이상하게도 학점이니 스펙이니 하는 것들 역시 그 간극을 따라 벌어져만 갔다.

사실, 내 마음이 전기공학이라는 학문에 닿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다. 2학년 말부터 나는 진로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패배주의를 떨쳐내려면 반드시 어떤 ‘도약’이 필요할 텐데, 남들의 등을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결국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아 방향을 틀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학과에서 복수전공은 거의 금기시된, 하나의 ‘일탈’에 불과했다. 실제로 한 교수님과의 면담에서는, 전혀 다른 분야로 향하려는 나를 만류하시며 그것은 스스로 ‘도태되길 선택하는 행위’라고까지 하셨다.

그럼에도 나는, 그저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일 만큼 과감하게 방향을 틀었다. 이상하게도 새로운 분야에서는 마음이 움직였고, 그 속에서 나름의 즐거움과 의미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 과정은 너무 길어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리고 마침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스스로를 보며,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나는 왜 그토록 쉽게 패배주의에 빠졌던 것일까?

“어느 노스님이 항아리에 고인 물기를 빼기 위해 동자 스님에게 항아리를 뒤집어놓으라 하셨다. 동자는 알겠다고 대답하곤, 그대로 항아리의 겉과 속을 뒤집어버렸다. 노스님은 아무 의심 없이 따르는 아이에게 새삼 감탄하며, 그 순진한 마음에 조금의 혼란도 주지 않으려 다시 항아리를 바로 세우라 일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