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8일

친구의 죽음

어느날, 친구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야.. J 죽었대

그 순간의 감정은 지금도 정확히 묘사하기 어렵다. 굳이 하자면, ‘충격이지만 담담한’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이든, 그 소식이 닿으면 마음부터 먼저 멈춰선다. 하필 그 전화를 받기 직전, 중학교 교사로 일하던 엄마가 “요즘 중학생 중에 자해하는 애들이 너무 많다”며 한숨 섞인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나는 위로란답시고, “그래도 그런 애들 치고 진짜 죽는 애는 못 봤어” 따위의 말을 내뱉었다. 말은 늘 운명보다 먼저 달린다. 그때 나는 몰랐다. 몇 분 뒤, 내가 가장 잘 아는 ‘그런 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거라는 걸.

J는 대학 후반기에 자주 술을 마시고 놀던 친구였다. 불안한 사람끼리는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아본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어떤 떨림, 남들이 듣지 못하는 미세한 균열의 소리. 한숨 따위가 없이도 들리는, 그런 소리였다. 늘 밝게 굴고 농담을 던지면서도, 문득문득 눈이 먼 데를 바라보 듯 흐려지곤 했다.

J는 많이 힘들어했다.

그녀의 손목에는 깊고 얕은 상처들이 빽빽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시간이 그녀의 살을 조금씩 뜯어먹고 간 흔적 같았다. 함께 술을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나 너무 힘들어’라며 눈빛으로 외치던 때가 있었다. 나는 그 눈빛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농담으로 넘기기 일쑤였다. 그때의 나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J는 어쩌면 ‘살아야 할 이유’ 같은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는 그러기엔 너무나도 부족했다.

J의 소식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히 지나갔다. 슬픔은 대개 요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음파가 사라지듯 하루하루가 잔잔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내려앉고 난 뒤에는 오히려 공허만이 남았다. 분명 슬펐는데, 감정이 폭발하기보다는 방 한가운데 멍하니 서 있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예상했던 일이어서 그랬던 걸까, 그저 시간이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며칠 뒤부터 4년이 지난 지금까지 J의 흔적이 하나둘 떠오른다. 같이 새벽까지 서울대입구역 파전집에서 막걸리를 기울던 기억, 술김에 갑자기 사라졌다가 편의점 앞에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던 모습, 그러고는 또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와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말하던 버릇. 그 모든 게 이제는 하나의 긴 그림자처럼 이어져 잊혀지지가 않는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였다. 친척 한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모시고 가려 하자, 할머니는 “젊은 사람이 죽는 건 너무 마음이 아파서 도저히 못 가겠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땐 몰랐지만, 비로소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 우리게엔 J는 떠나선 안될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은 내가 그이를 필요로하는 그것보단 더 무거웠다.

잘 지내지?

네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평온이라는 게, 지금은 너에게 조금은 닿아 있기를. 이제는 누가 널 흔들어 깨우지도 않고, 마음속 상처들이 다시 벌어지지도 않는 그런 곳에서 편히 있기를.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