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학문: 둘 이상의 학문 분야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학문.
융합 학문이란, 여러가지 학문과 그 연구방법론을 접목하여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연구자가 데이터 기반의 교육 연구를 하려면 데이터 사이언스와 교육학을 접목해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이런 경우를 interdisciplinary하다고 하는데, HCI의 기원과 정의 또한 ‘융합학문’이라는 키워드에서 비롯된다.
HCI는 컴퓨터공학, 심리학, 전기공학, 인지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종사하는, 그런 재미있는 분야이다. 정의 자체는 이름 (human-computer interaction) 그대로 인간과 컴퓨터가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에 관한 것인데, 하도 정의도 넓어지고 (요즘엔 human-drone interaction도 있던데..) 해서 나도 모든 HCI 연구자들이 수긍할만한 HCI의 정의는 잘 모른다.
뭐 어쨌든, 어찌어찌 하다가 HCI라는 분야를 전공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학교에서 HCI를 전공으로 들을 수 있는 곳은 컴퓨터공학과, 좀 더 쳐줘도 언론정보학과밖에 없고, 정말로 ‘나는 HCI라는 전공을 해’라고 할 수 있는 학부 수준의 학과는 없다. 그래서 나도 원전공은 전기정보공학부(ECE)라서 HCI는 교수님들도 모르시고 동기들은 더 모른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는 뭐 여러가지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곤 하는데, 이렇게 한 집단에서 유일하게 HCI를 하면 받는 질문을 대표적인 예시들로 정리해보았다.
제일 짜증나는 질문이다. 남들이 내가 하는 것을 몰라줘서 짜증나는게 아니라, 내가 진짜 몰라서 짜증나는 것 같다. 다양한 백과사전에서는 정말 ‘인간-컴퓨터 간의 상호작용’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소셜컴퓨팅처럼 컴퓨터를 중심으로 인간들 간에 상호작용 하는건 잘 포함하기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부터, 별별 딴지를 걸게 된다.
사실 이건 불가피한게, CHI라고 불리는 HCI의 탑 학회의 풀 네임도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이다. 교수님에 따르면 예전에는 진짜 ergonomics나 인간 요소를 이해하는 것으로 HCI의 정의가 국한됐는데, 기술의 발달 및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로 개념이 거기서 확장되어 지금의 넓은 정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앞으로도 기술의 진보가 있으면 더 넓어질 것 아닌가 하는 나이브한 생각이 든다.
쨌든, HCI가 뭐냐는 말은 참으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너 UX 알지? 어 맞아 그 사용자경험. 그런거 비스무리한거 배우는거야 ㅎㅎ”라고 말하면서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책임한 대답을 한다. 사실 이 대답이 내 지식, 그리고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CMU/Apple의 Jeffrey Bigham이 본인의 블로그에서 비슷한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 본인이 CS에서 유일한 HCI 전공자일 때 어떤 느낌인지 대놓고 이렇게 언급한다.
When I visited, no one at Rochester asked me the dreaded/stupid question about why HCI is computer science (like they did at several other places).
본인의 블로그에도 비슷한 언급이 있다.
The two hardest problems in computer science are: (i) people, (ii), convincing computer scientists that the hardest problem in computer science is people, and, (iii) off by one errors.
이렇게 사람들은 컴퓨터과학에 사람이 왜 들어가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고, 이럴 때 꽤나 HCI 전공자들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그냥 위의 두 quote에 답이 다 있는 것 같다. “공학”은 이론을 사람에게 유용하게 하기 위해 가공하는 과정이니, 당연히 사람을 이해하는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컴퓨터과학은 사람이 중요해서 HCI가 중요하다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을 고안했다고 이를 ‘좋은 설계’라고 하진 않으니까…
그러면 나도 똑같이 ‘그럼 전기과에서 졸업하면 보통 뭐하는데?’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보통 ‘대학원 가거나 취업하거나, 뭐 그러지’ 이런다. 그러면 나는 우리도 똑같다고 말을 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수긍한다. 이 질문을 물어보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이 두가지 중 하나이다. i) 다학제 학문인 만큼 진로가 제한되어 있지 않을까, ii) 특별한 진로같은게 있지 않을까.
먼저, i)는 뭐 할 말이 없다.. 전기공학을 전공하면 대학 내에서 거의 가장 취업에 유리한 것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여기 왔다고 취업이 안되고 그런건 전혀 없다. 오히려 취업하러 HCI를 전공하는 사람도 많고, 무엇보다 이런 말들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게 고등학교 때 나 포함 대부분이 서울대라는 연구중심대학에 학문을 한다고 자소서 적어서 들어왔으니깐 취업의 유불리에 관해서는 딱히 대답을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ii)는 음.. HCI를 전공하면 보통 회사에서 UX 디자이너 하고 이런 분들을 꽤 많이 뵙는데, 그런 쪽이 다르다면 다른 진로인 것 같다. 졸업 후에 사용자 조사하고, A/B 테스팅하고 이런 것들을 하는 일을 많이들 하시는데, 그런게 전공을 살린 꽤 독특한 진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