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박사님 (HCI+d Lab)과 윤상원 (SNU LAW)님과 함께한 포스터가 이번 CHI ‘21 Late-breaking work에 억셉되었다. BlahBlahBot이라는 제목의 해당 포스터는, 처음 만난 사람끼리 대화를 할 때 종종 어색해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통된 대화 주제를 추천해주는 시스템을 선보인다. 기존에도 이와 비슷한 연구 등이 있었지만, 본 연구는 온라인 상황에서 아주 신속하게 대화를 중재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본 연구에서 나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Word2Vec 등의 알고리즘을 활용하였다 (Bert 등 딥러닝 알고리즘을 쓰려고도 했지만, 굳이 이런 artifact를 위해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아주 재미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다.
타임라인이 아주 빠듯한 연구였지만, 뭔가 내 연구라고 생각하니 더 시급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특히, CHI ‘20 페이퍼 이후에는 별다른 퍼블리케이션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포스터에 더 목숨걸고 했던 것 같다. 억셉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내 종특이지만) 3점이 안될 것 같다며 징징대고 있었지만, 막상 결과는 4, 4, 5, 4로 아주 높은 점수가 나왔다. (결과 나오는 날에 여지없이 Gmail의 ‘띠딩’ 알림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나..)
내가 연구를 시작했을 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학부생 입장에서 국내에 몇개 없는 HCI 연구실에 돌아다니며 인턴 좀 받아주십사 하며, 연구 기회를 얻으려고 아둥바둥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몇번 까이기도 했고, 그러면서 느낀 점은 ‘퍼블리케이션이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맞다. 아무것도 모르는 학부생에게 기회를 주는 데에는 연구실도 큰 위험부담이 있을 테니..
그 때, 우연히 잡게 된 연구 기회를 살리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코딩을 배우고, 페이퍼를 읽었다. 페이퍼 하나를 쓰는데 거의 300개 가량 되는 페이퍼를 훑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마치 귀신에 홀린 듯했다. 어쨌든 그렇게 노력한 뒤 페이퍼가 붙었고, 나름 ‘뽕’에 취해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나에게 관심이 많이는 없으셨던 우리과 교수님 한분은 그 소식을 듣고선 너무 잘했다며 칭찬해주시기도 했고, 하고싶은 연구를 하기 위해 연구실 문을 두드릴 때 보다 장황한 말로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때, 예전에 페이퍼를 같이 썼던 공저자 한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동훈씨, 정말 대단한데 절대 여기서 방심하진 마요. 이른 시간에 페이퍼를 쓰면 쉽게 무너질 수도 있어요.”
처음에는 아 절대 그럴 리는 없다고, 딱히 이 성취에 대해 별 생각 없다며 넘겼다. 하지만, 이제서야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다가온다. 그 이후, 나는 페이퍼 실적 하나로 어느정도 스스로가 ‘다듬어졌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사람마다 연구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할 진 모르겠지만, 스스로가 마음고생한 것 치고는 이후 결과가 잘 나오질 않았고, 내가 공저자분이 말씀해주신 ‘늪’에 빠지는건 아닌가 싶었다.
나름 이런 측면에서 이번 포스터는 나에게 중요하게 다가왔다. 누군가에겐 포스터가 그저 late-breaking한 연구물을 선보이는 공간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 제출을 내 자신감 회복을 위한 큰 여정이라고도 생각했다. 너무 다행히도 재능있는 공저자들과 너무 좋은 콜라보를 했고, 정말 초심으로 돌아온 듯 생각하며 연구했다. 물론 마음고생도 꽤 했지만 결과는 정말 내가 고생한 만큼 나왔고, 이제 스스로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한 내가 집중했던 연구는 대부분 시스템 연구였다. 챗봇 혹은 앱과 같은 interactive한 시스템을 만들며 유저 스터디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나온 결과를 퍼블리시 해왔다. 하지만 우연히 Improving Fairness in Machine Learning Systems: What Do Industry Practitioners Need?라는 페이퍼를 보게 되었고, 너무 내 스타일의 연구여서 이렇게 design space를 탐구하고 needfinding을 하는 질적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운좋게도, 지난해 말 이 페이퍼를 1저자로 쓰신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연구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앞으로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이를 위해 CSCW 등의 high-level하고 theoretical한 venue의 페이퍼를 많이 읽어보고 있고, 특히 이 페이퍼와 같이 질적 연구의 norm, guideline등을 설명하는 글을 즐겨 읽고 있다.
또한, 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야는 Explainable AI 쪽이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기초적인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사용해보니, 정말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알고리즘을 사용자가 받아들이는건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사용자가 (대화 주제를 선택하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는 본인이 하도록 agency를 주는 방향으로 이를 해소하였고, 다른 방법은 모델을 ‘설명’해주는 explainability가 있다.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관련 프로젝트를 빡세게 해서, XAI에서 기본적으로 알아야할 내용은 습득하고 이런 지식을 새로운 프로젝트에 적용할 정도는 되는 것이 내 목표이다.
앞으로 고쳐야 할 나의 단점은, i) 지나치게 내 연구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ii) 내가 주도하는 연구에만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i)은 내가 연구 경험이 별로 없어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앞으로 보다 많은 경험을 쌓으며 어느정도 내 자신에 대한 기준이 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ii)는 그냥 내 성격인 것 같지만 (..) 세상에 혼자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없으니 다른 이들의 연구도 돕고, 나도 도움을 받고 하는 연습을 계속 하며 이런 콜라보가 ‘체화’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