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이전에 진행했던 연구에 대해 나름대로 성찰을 하고 있다. 너무나도 많은 실수가 있었고, 이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새 연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할 점들이 아주 많지만, 맨 처음 드는 생각은 당연 돈이었다. 돈이 없으면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연구에서 지출한 연구비 정리본. 순수 연구비로만 무려 500만원 가까이 들었고, (취소되었지만) 여기에 학회비까지 고려한다면 1,000만원이 넘는 연구였다. 반대로 말하면, 돈이 없으면 진행되지 못할 연구였다.)
예전에 많은 예술가들은 든든한 후원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생계 걱정을 하지 않고 예술을 추구하였다. 연구도 마찬가지로, 돈이 많아진다고 필연적으로 연구의 질이 올라간다고 단정하진 못하지만, 돈이 많으면 연구의 질을 타협할 불상사는 생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번 학기에 수강중인 디지털 에쓰노그래피 수업에서 발제를 했던 Le Dantec의 CSCW’15 페이퍼에 따르면, 저자는 커뮤니티 기반의 연구를 할 때 대상자들이 돈을 주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 고생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Artifact 연구의 경우에는, 시스템 개발 비용부터 실험비, (그리고 혹자는 논문 첨삭비까지) 그야말로 돈을 ‘때려박는’ 연구를 하게 된다. 누군가가 ‘후원자’가 된다면, 정말 좋을 일이다.
학부생은 연구적 역량 및 배경지식이 당연히도 교수, 대학원생, 그리고 다른 전문 연구원들에 비해 부족하다. 내가 연구를 지원하는 주체라고 하더라도, 논문실적 하나 없는 학부생에게는 단 10원도 투자하기 아까울 것 같다. 안타깝지만, 지원하는 주체 입장에서도 연구를 지원한다면 특허, 논문, 혹은 사회적 기여와 같은 실적을 기대할 것이고, 같은 금액을 지원했을 때 연구 실적의 기댓값은 유경혐자가 훨씬 높을 테니..
하지만, 연구에 대한 접근성이 올라가면서 학부생 또한 연구에 참여하는 것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예전 학부 분위기를 잘 알진 못해서 단정하지는 못한다.) 이에 더해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주입적인 교육에 대항해 주도적인 (student-direted) 학습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겹치면서, (감사하게도) 학부생에게 최대한 연구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이에 발맞춰 만들어지고 강화되는 것이 학부생연구지원사업. 많은 학교에서는 학부생에게 일정 수준의 연구 참여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이런 프로젝트를 제공하고 있다. 비록 요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지만 (내 주위에서도 이번해 꽤나 많이 지원해서 아주 놀랐다), 인원수에 따라 300~700만원까지 제공되고 교수자, 조교에게 추가적인 금전적 지원까지 하니 연구 지도를 받기도 쉬워진다. 다만 타임라인이 꽤나 엄격하게 정해져있어서 (대략 6개월정도 내에 연구를 완료해야 한다. 나는 IRB를 받는데만 2개월..읍읍), 연구에 매진해서 시간을 어느정도 맞출 자신이 있을 때 신청하면 아주 좋을 프로그램이다.
이와 비슷한 지원 프로그램 중에, 한국과학창의재단 학부생연구프로그램도 있다. 비슷한 조건에 시기도 비슷하다. 다만 더 넓은 풀에서 지원을 할테니, 지원에 선정될 가능성은 조금 더 낮아보인다.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심각하게 했다. 이번 CHI에는 페이퍼를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느 시기 안에는 무조건 연구비를 지원받아야 해서 되게 쫓기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히도 공식적인 연구비 지원을 받았지만,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어느정도 진행한 연구를 가져가 아무 교수님한테 빌 것 같다 (…) 이거 무조건 섭밋할테니, 제발 연구비를 지원해주십사 하고.. 연구 뿐만이 아니라,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마음이 아파서라도 도와주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