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떠나게 됐다. 이번 해 1월부터 휘몰아치듯 박사 유학 관련 인터뷰를 보고 (정확히 10군데에서나 인터뷰 요청이 왔다), 거기서 합격한 몇몇 학교들 중 객관적으로도 가장 좋고 내가 제일 가고싶었던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박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참 웃긴 일이다. 뭐 이때까지 연구를 학부생 치고는 오래 해왔지만, 그래도 서울대에 처음 입학한 후 ‘난 더이상 공부는 하지 않을거야’ 하며 1년간 2점대 학점을 유지하고 (?) 정말 열심히 놀아왔던 걸 생각하면.. 어떻게 박사까지 할 생각을 하게 됐는지 스스로가 참 대견(?)하다. (물론 그 와중에 이준환 교수님과 같은 은사님들의 도움으로 제 길을 찾을 수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역변하는 모습은 나도 적응이 정말 안된다). 달리 말하자면, 내가 학문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좀 웃기다.
그리고 새로운 소식은, 이번에 국비유학생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고용 기반의 (RA/TA) 교내 펀딩의 수혜를 받아 노동(?)을 하며 등록금, 생활비는 받아서 부모님 손을 벌일 필요는 애초에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애틀의 살인적인 물가는 여러모로 걱정이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번 해 국비유학생으로 선발이 되어 한시름 덜게 되었다. HCI라는 (나름의) 신생 학문, 게다가 극한의 융합 학문을 추구하는 사람을 과연 뽑아줄까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그래도 정부가 지난번 대통령과학장학금 선정에 이어 열린 마음으로 융합 분야를 인정해준 것 같아서 매우 뿌듯하고, 감사하고, 또 우리 나라가 이젠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낄 따름이다.
이제 곧 다가올 박사 첫 학기 (엄밀히 말하자면 쿼터다)의 시작을 위해 지금은 시애틀에 와서 정착해 살고 있다. CMU에서 랩인턴을 할 때 만난 중국인 친구 Leijie가 (놀랍게도 같이 UW에 오게 되었다!) 고맙게도 연락을 줘서, 어떻게 집을 같이 보러다니고 하면서 정말 수월하게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도착하자마자 CHI 페이퍼 데드라인이 겹쳐서 여태 서울에서도 그랬듯 밤새서 글 쓰고 정신이 없었지만, 페이퍼 섭밋이 끝나고선 지도교수님, Leijie, 랩메이트 등등 좋은 사람들이 옆에서 정말 많이들 도와줘서 잘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애틀이란 도시도 참 마음에 든다)
사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 만큼, 감정적으로도 여러번 왔다갔다 하며 되게 혼란스러웠다.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 가족과 친척이 구경(?)왔을 때 사실 앞에선 덤덤한 척 했지만 너무 스트레스 받고 떠나기가 싫었다. 게이트 앞에서 너무 긴장되던 나머지 페이퍼를 적으면서 생각을 없애보려고도 해봤지만, 타이핑조차 할 힘도 없는 채 그냥 눈물만 핑 돌았다. 그리도 정신없던 그때를 생각해보면, 지금 이리 재밌게, 좋은 사람들과 지내며 너무나도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