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사람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들 중 하나가 남들에게 지는건데, 나는 어릴 적부터 특히나 경쟁심이 강해서 누구보다 잘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까진 내가 하면 무조건 남들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는데, 대학 들어오고 나서는 내가 넘볼 수 없는 ‘계급’이 생겼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이게 정말 끊어낼 수 없는 그런 벽이었는지, 대학 입학 후 2년간 나는 어느정도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 ‘계급’은 보통 영재고/과고 여부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는 학점이란 단위로 수업을 수강하는 것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처음 알았다. 그러다보니 소위 ‘꿀강’, ‘이동시간이 적은 수업 조합’ 이런 개념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니 학기가 편했을리가. 이젠 4년이나 지났지만 아직 그 학기에 적응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는 아직까지도 뚜렷히 기억난다.
그런 와중에, 학과의 많은 영재고/과고 출신 친구들은 나름대로 아주 준비가 잘 되어있었고, 내가 듣도보도 못한 대통령과학장학금, 이공계장학금 이런 얘기를 하며 금전적인 부분들마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그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다른 ‘부류’의 사람이 되고 있었고, 이상하게 학점, 스펙 따위의 정성/정량적인 것들이 이에 발맞춰 차이가 나기 시작한 것은 덤.
사실, 도저히 전기공학이란 학문에 정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2학년 말부터 내 진로에 대해 고민을 아주 많이 시작했다. 이런 패배주의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leap’이 필요할텐데, 이 상황에서 남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남들 뒷꽁지를 따라가기만 하다 지쳐 쓰러질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서 길을 틀까? 하지만 우리 학과에서 ‘복수전공’ 따위는 모두에게 터부시되는, 일개 ‘일탈’일 뿐이었다. 학과의 한 교수님과의 면담에서, 이를 극구 만류하시기도 하였듯, 분야를 트는 것은 주위 환경에서 스스로 ‘도태되기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난 그냥 정신 나간 것처럼 질렀고, 이상하게 그 분야에는 흥미가 가서 어느정도 재미있는 일을 찾아낸 것 같다 (자세히 말하기에는 과정이 너무 길어서 생략). 이후 스스로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는 것을 보면서, 다시 나는 대학 초반 2년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왜 스스로 패배주의에 빠졌을까?
“어느 노스님이 항아리에 묻은 물기를 빼내기 위해, 동자 스님에게 항아리를 뒤집어놓으라고 말씀하셨다. 동자 스님은 알겠다며, 항아리의 겉과 속을 뒤집어놓았다. 노스님은 아무 의심없는 아이를 보며 새삼 감탄하며, 아이에게 작은 의심조차 주지 않기 위해 이를 다시 뒤집어 놓으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