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점수
GRE란 Graduate Record Exam의 줄임말로, ETS에서 주관하는 대학원 진학용 영어 시험이다. 토플, 아이엘츠랑 다른 점이라면 보다 academia-oriented된 시험으로, 영어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험이라기 보다는 어느정도 독해, 학문적 사고를 중요시하는 시험인 것 같다. 파트는 Verbal, Quant (170점 만점, 1점 단위 배점), 그리고 Writing (6.0점 만점, 0.5점 단위 배점)으로 이루어져 있고, 시험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 W-W-Q-V-Q-V-Q 또는 W-W-V-Q-V-Q-V (각 섹션 30분간 진행). 이 중 3개의 세트를 치르는 과목에서 하나의 셋은 dummy이고, 물론 후술할 이유로 한국인들은 Verbal을 세개 치르는 것을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아주 다행히도 나는 Quant를 세번 쳤다).
사실 요즘들어 많은 미국 학교들이 GRE를 안보기 시작했고, 나도 지망하는 학교 중 두곳 빼고는 죄다 not required나 optional이었기 때문에 시험을 치를까 말까도 엄청 고민했다. 그래도 점수 하나 없어서 학교를 지원 못했다는 후회를 할 바에 그냥 치고 말지! 하고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전제를 하자면, 내 원래 영어실력은 TOEFL 100점 중반대 정도이고 나는 정확히 1달동안 강남 해커스어학원을 다니며 공부해서 Verbal 161, Quant 170, Writing 4.5의 오피셜 점수를 받았다. 뭐 아주 잘난 점수는 아니지만, 애초에 Verbal 155, Quant 165, 그리고 Writing 3.0만 넘어도 다시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나름 만족하며 GRE를 졸업(?)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시험 하나에 목숨거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편이기도 하고, 특히나 GRE는 시험 자체가 너무 준비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의욕을 종종 잃어 결과적으로 오랜 시간 공부를 하지 못했다. 오히려 아주 영악하게 단기간에 적당한 점수를 받는 것을 목표로 시험을 준비했기 때문에, 이 경우가 아니라 철저한 계획 아래에서 매우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면 아래의 멋진 후기들을 참고해보도록 하자.
후기 1: Jaeyoon Song 후기 2: Jaewon Chung
이 포스트의 의견들은 철저히 내 주관임을 가정한다.
Verbal의 경우, 나는 이훈종 선생님의 실전반 수업을 수강했다. 사실 뭐 이훈종 선생님의 수업 방식이 호불호가 갈린다고는 하지만, 나는 어느정도 직설적인 방식으로 수업하는 방식이 잘 맞는 편이라 너무 좋았다.
특히, 이훈종 선생님의 가장 큰 장점은 선생님이 제공해주시는 방대한 자료에 있다. 수업 교재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문제를 제공하고 있고, 가장 중요한 점은 수업시간에 해당 문제가 적중인지 알려주신다는 점이다 (적중이 아니면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데, 적어도 anecdotal한 느낌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수업 중간중간에 나눠주시는 문제 자료집이 더 좋았다. 실제로, 시험을 치를때 첫 Verbal 셋에서 이훈종 선생님이 제공해주신 자료집에서 나온 문제가 많이 나왔고, 나중에 레포트를 확인해보니 20문제 중 17문제를 맞았다 (첫 세트에서 많은 문제를 맞추는 것이 고득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첫 세트를 바탕으로 두번제 세트의 난이도를 조정하는, adaptive한 시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번째 세트에서는 정확히 반타작했지만 꽤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GRE Scoring Grid 참고).
근데, 아직까지도 의문인 사실이 하나 있다. GRE를 흔히들 괴로운 시험이라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괴랄한 단어가 많이 나와서 도저히 알지 못하면 풀 수 없는 Sentence equivalence, Text completion (SE/TC) 문제들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다들 단어 암기에 목숨을 걸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GRE를 공부할 때 굳이 그렇게 단어에 목숨을 걸어야하나 의문이 들긴 한다. 애초에 암기한 단어들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마법같이?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지고, 그 시간에 ‘아는 단어가 나온’ SE/TC나 다른 RC 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추는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이훈종 선생님의 커리큘럼에 있는 파워보카/핵단어 중에 파워보카는 시작하지도 않았고, 핵단어도 1500개 정도 중에 800개만 외우고 때려쳤다. 그것도 그냥 Quizlet이라는 앱에서 단어 선택 방식으로만 외워서, 솔직히 단어 중에서 50%는 나중에는 봤다는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물론 하나라도 더 맞춰서 170에 근접한 점수를 얻어가야 한다면 딱히 좋은 전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고득점이 필요하진 않았기 때문에 나름 괜찮은 비교우위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Quant는 literally 고등학교 이하 수준의 문제들을 푸는 섹션이다. 정말 대한민국 이공계 학생, 아니 수학을 많이 활용하지 않는 계열의 학생이라도 손쉽게 풀 수 있는 내용이 출제된다. 다만, KMF 모의고사를 몇번 풀어보니 영단어가 헷갈려서 가끔 틀리곤 해서, 일단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별도의 공부 없이 Quant에서 나올법한 단어만 다 외우고 갔다. 외울 단어의 범위는 다양하겠지만, 나는 이 단어집 정도를 외우니 딱히 모르는 단어로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렇게 단어를 외우는 동시에, KMF 모의고사를 1~2회정도 풀어보는 것을 강추한다. 아무래도 단어 이외에는 아무 공부도 없이 치르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익숙해진다는 차원에서 한번 풀어가면 그래도 마음이 좀 안정되더라.
Writing은 이정현 선생님의 중급반 강좌를 수강하였다. Argue/Issue로 이루어진 두가지 종류의 토픽에 대해서 본인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쓰는 섹션인데, 많은 한국인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다. 나는 비록 HCI 쪽에서 페이퍼를 몇번 써봤기 때문에 영어 글쓰기에 (반강제적으로) 익숙해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30분 남짓한 시간 내에 600단어 정도의 에세이를 쓰는 것은 여간 부담되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정현 선생님의 수업을 한번 수강하고, 아이디어를 어떻게 끌어내서 글을 쓰는지 요령만 배우니 그래도 글쓰기가 많이 수월해졌다. 특히, 해당 토픽에 대한 본인의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글을 쓰는 방식을 알려주시는데, 선생님께서 이런 아이디어 정리를 잘해주시다 보니 보며 따라하니 나중에는 어느정도 요령이 생겼다.
다만, 선생님께서 아이디어 정리 3분 - 글쓰기 27분 정도로 시간을 할애하라고 하셨는데, 그 방식대로 하니까 도저히 아이디어 구상을 잘 못하겠어서 마지막 시간에 5분-25분 정도로 나눠서 해도 되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근데 선생님께서는 7분까지도 늘려도 된다며, 본인의 재량에 따른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사실 나는 글쓰기는 정말 빠른데 생각이 빠릿빠릿하진 않는데, 7분-23분은 너무 또 촉박할 것 같아서 5분-25분으로 생각하며 진행했고, 시간 배분 차원에서는 나름 괜찮았던 것 같다.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 점수가 잘 나와서 놀랐는데, GRE를 준비하거나 준비했던 사람들 대부분 생각보다 시험장에서 치르는 시험은 모의고사보다 점수가 잘 나온다며 독려해주었다. 실제로 시험을 치고 보니 왜 그렇게 불안해했나 싶을 정도로 점수가 어느정도 인간미 있게(?)는 나왔고, 아마 그 전에 하도 GRE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많이 들어와서 걱정을 많이 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GRE라는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는 입장이라면 본인의 자신감에 취해 나태해지면 안되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자신있게 치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